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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지어낸 이야기 (2010.10.31)

영어공부 한답시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이런 말들이 나왔다.

for the intimate revelation of young men, or at least the terms in which they express them, are usually plagiaristic and marred by obvious suppressions.

  사람들의 호소에서 표절의 냄새를 읽을 때가 있고 그 호소가 어딘지 검열을 했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나를 돌아보면 이는 명백하다. 이렇게 거짓된 측면이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진정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호소에서 이야기를 지어낸다. 나는 자기 이야기밖에 못하지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자기 이야기뿐이지만 그 이야기하기가 또 쉽지 않다는 것에 내 어려움이 있었다. 내 이야기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표절의 냄새가 고약하게 나고 억압될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이야기들을 잘할 수 있는지. 말을 잘 한다는 게 싫어질 때가 있는데 나는 말을 잘하는 것도 힘들었고 잘들어주는 것도 힘들었다. 지어낸 자기 이야기들을 믿으면서도 의심했다.

  그 사람이 자기이야기를 하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말들을 전혀 안하지 않는데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영원히 불충분한 사랑에서 연유한다. 충분한 자기애와. 롤랑바르트의 글을 쪼가리한 것에서 보았다. 아래는 그것의 인용이다.



  “그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그를 느낄 때--쇼펜하우어가 연민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더 정확히 말해 고통 속에서의 결합, 고통의 일치라 할 수 있는 것--우리는 그가 자신을 염오하면(파스칼처럼) 우리 또한 그를 염오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환각에 시달리거나 미칠까봐 두려워한다면, 나 또한 환각해야 하고 미치광이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이 어떠하든가에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기에 나 또한 동요하며 괴로워하나, 동시에 냉담하며 젖어들지 않는다. 나의 동일화는 불충분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이긴 하지만(그가 내게 걱정거리를 준다.), 불충분한 어머니이다. 내가 실제로 그를 보살필 수 있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진정으로 그 사람의 불행에 동일시하는 그 순간에, 나는 그 불행에서,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일어났으며, 이렇듯 스스로 불행해진 그는 나를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읽기 때문이다. 나와는 무관한 이유로 해서 그 사람이 그토록 괴로워한다면 그건 내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고통이 내 밖에서 성립하는 한, 그것은 나를 취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하나의 역전이 내도한다. 그 사람이 나를 제쳐두고 괴로워하는데, 왜 내가 그 대신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불행이 나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하는데, 왜 나는 그를 붙잡을 수도, 그와 일치될 수도 없으면서 그의 뒤를 숨가쁘게 쫓아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 타자의 죽음 뒤에 홀로 살아 남는 그 순간부터 모든 주체의 입에서 나오는 저 억압된 말, 살자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압박하지도 내 정신을 잃지도 않으면서 그와 더불어 괴로워하리라. 아주 다정하면서도 잘 감시된, 애정에 넘쳐흐르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이 처신에, 우리는 부드러움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연민의 “건전한”(개화된, 예술적인)행위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문학과지성사, 1991,pp. 83-85)

by 말려봐 | 2012/05/04 01:42 | Sentimental | 트랙백 | 덧글(3)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나의 스무 살. 그 때는 변화의 바람, 아니 보다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변화의 태풍이 불었다. 예보도 많이 들었고 예상도 했던 스무 살의 태풍이었지만 그 새로움과 변화라는 것은 썩 좋은 방향이 아니라고 해도 짜릿한 것이었다. 얼마나 짜릿했던지 나는 결국 남게 될 태풍 피해에는 아랑곳않고 심지어 내 몸까지 하늘로 날릴 것 같은 바람에 신기해하며 태풍이 더 강력하게 불기를 바라는 초딩의 심정으로 스무 살의 태풍을 만끽했다.

  이러한 태풍을 만끽하고파 하는 심정은 이미 앞 문장에서 약간 암시가 되었겠지만 스무 살 때 처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열살 때 나는 강력한 태풍을 만끽하고 심지어 날아갈 뻔한 어린이였다. 우리 지역의 태풍에 공중파 뉴스는 우리 지역을 주목했고, 그 전에 없던 스포트라이트는 심지어 내가 우리 지역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고양되어 하늘을 날 것 같았고, 실제로 태풍이 나를 고양시키기도 했다. 태풍상태에서 우산을 펴고 점프를 하면 태풍은 나를 더 높이 올라가게 했다. 태풍이 나를 날게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고 나의 날개였던 우산은 부러지고 살이 뒤집히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매우 울상이 되었고 태풍의 무서움도 '몸소' 알게 되었다.

  내가 스무 살에 맞이했던 변화의 태풍 역시 무서운 것이었는데 사실 나는 잘 몰랐다. 무섭다는 것, 결국 내가 들어선 이 세계가 세계의 끝이 아니라 세계의 시작이라는 무서운 사실도 나는 잘 몰랐다. 지금 이렇게 남들보다 더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도 그 과거의 잘 몰랐던 무서운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무서움을 전혀 몰랐다면 이제는 너무 무서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무서움이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이 부끄러움이 무섭기도 하다. 부끄러움이 무섭다는 것도 무섭다. 이것이야말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무섭다는 사실을 말하는 내가 가장 무섭고 가장 의심이 간다.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내가 너무 잘 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무서울 때, 삶에 매달릴 때는 차라리 무서움을 모르던 때가 더 편하고 좋았었지 싶다. 아무 것도 모르던 때 태풍에 날아가고 싶어 했던 약간은 그로데스크했던 순수의 시절이 말이다.

by 말려봐 | 2010/05/26 02:19

옛 가을의 빛

옛 가을의 빛   _허수경


개들은 불안한 고독의 날개를 가진 나비를 쫓아다녔다
저수지에 고인 물의 살 속으로 깊이 침입하던 바람은
수초를 기슭으로 자꾸 보냈고
하여 저수지 기슭에는 붉은 물풀들이 행려거지처럼 누워 있었다

고추가 마르던 집 앞에서 빛은 고독한 매운내를 풍기며 앉아 있었다
가지가 마르던 마당에 보랏빛으로 고여들던 어둠은
할머니가 피우는 담배 연기 속으로 들어가 해맑은 죽음의 빛으로 살아났다

병아리가 종종거리는
맨드라미가 붉은 손을 자꾸 흔드는
그 마당에 가만히 앉아서 김칫거리를 다듬던 새댁의 눈 안에 고인 눈물 빛

벙어리 소녀는 낡은 거울 앞에서
낡은 결혼예복을 입어보았다
결혼예복 속에는 원앙 두 마리가 낡은 금빛 자수에 안겨 있었다
날아가는 빛을 보면서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녀가 수음을 했다

우물에 기대어 먼 빛만 바라보았다
묵직한 우울함이 우물에 가라앉은 빛이 될 때

먼 산 숲에 핀 버섯이 가만가만 공기 속으로 돋아났고
흙은 아렸다

얼마나 무료한 나날들이 빛 속에 있는가
그날 죽을 것 같은 무료함이 우리를 살게 했지, 아주 어린 짐승의 눈빛 같은 나날이었다.

(in 문학동네 2009 겨울)

by 말려봐 | 2010/04/25 16:24 | 트랙백 | 덧글(1)

서늘

  서늘한 냄새를 맡고 싶어서 나는 더 음습한 서가로 파고들었다. 그 서늘하고 음습한 서가에서 나를 엄습했던 것은 점점 오래된 인간이 되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오래된 서가로 들어갔다는 것은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체념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제 내 사랑이 하찮고 보잘 것 없음을 깨닫고 체념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잘 것 없다는 그러한 사랑의 초라한 진실'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그늘 아래 나는 들어갔고, 당분간은 이 곳에 안주해야 겠다. 안주라는 말이 안좋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자기방어를 하자면, 안주는 술먹을 때만 필요하고 좋은 것이 아니라 나같이 불안하고 붕뜬 사람에게는 한시적으로 필요하고 좋은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당분간은 서늘하고 그늘진 그 곳에서 축축하게 지내야겠다. 

by 딸깍발이 | 2009/06/27 00:15 | Sentimental | 트랙백 | 덧글(1)

머리가 맑지 않다

머리가 맑지 않다
수면시간은 적지 않은데, 카페인 섭취가 많아서인지
깊은 잠을 못자는 것 같다
차라리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왜 이렇게 꿈을 잘 기억하는지.

꿈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하루 두 잔으로 줄인 커피를, 더 줄여야 할 것 같다.
 

by 딸깍발이 | 2008/08/12 20:33 | Sentimental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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