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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눈다.

. 전혀 다른 여름은 이러한 인용의 인용으로 시작했었지.


김연수, http://larvatus.egloos.com/4176967

 

 

네로    다니카와 슌타로


      -사랑받았던 작은 개에게



네로
이제 곧 여름이 온다
너의 혀
너의 눈
너의 낮잠 자는 모습이
지금 또렷이 내 앞에 되살아난다

너는 단지 두 번의 여름을 알았을 뿐이었다
나는 벌써 열여덟번째의 여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것과 또 내 것이 아닌 여러 여름을 떠올리고 있다
메종 라피트의 여름
요도의 여름
윌리엄즈 파크 다리의 여름
오랑의 여름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도대체 이미 몇 번 정도의 여름을 알고 있을까 하고

네로
이제 곧 또 여름이 온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있던 여름은 아니다
또 다른 여름
전혀 다른 여름인 것이다

새로운 여름이 온다
그리고 새로운 여러 가지를 나는 알아차린다
아름다운 것 미운 것 나를 힘차게 만들 것 같은 것
나를 슬프게 만들 것 같은 것
그리고 나는 묻는다
대체 무엇일까
대체 왜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네로
너는 죽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멀리 가서
너의 목소리
너의 감촉
너의 기분까지가 지금 또렷이 내 앞에 되살아난다

하지만 네로
이제 곧 여름이 온다
새롭고 무한하게 넓은 여름이 온다
그리고
나 역시 걸어가리라
새로운 여름을 맞고 가을을 맞고 겨울을 맞아
봄을 맞아 더욱 새로운 여름을 기대하여
온갖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
그리고
온갖 나의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  인용이 끝나고, 내 스물 두번 째 여름이 가고 있다. 이 전혀 다른 여름동안 내가 보고 들으면서 미쳐 날뛰었던 것들이 있는데 나는 이것들을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고... 특정한 다수들과 나누고 싶은데, 이렇게 게시만 하는 걸로는 내 나누고 싶은 마음을 온전히 다할 수가 없다. 부탁한다면 나는 나의 여름들을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태그를 입력하라고 한다면 나의 전혀 다른 여름은 외모, 사랑 뭐 이 따위 것들이었다. 나의 전혀 다른 여름이 사로잡혀있었던 것들인데 그동안에 내가 사로잡혀있었던 것들과 전혀 다른 것 같지 않아서 나는 또 전혀 다른 여름이라는 것이 민망하고 그렇다. 누추하고 민망했던 나의 여름을 '전혀 다른'으로 꾸미는 것을 허락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다음과 같이 문학이 나와 여름을 전혀 다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워서...(이 말을 하는 것이 이제는 조심스러워졌다. 박민규때문이다.) 문학이 아름다운 것은 그리 명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호하고 경계에 있기 때문에 문학은 명료하게도 아름답다. 석양이 아름다운 것은 경계의 시간이기 때문이라 하지 않았던가. 문학은 인간 문제를 다루면서 인정과 저항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소위 이상과 현실 사이에 문학이 서 있다. 그래서 문학은 석양같은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문학이 하는 재현, 인간 문제의 형상화는 인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저항하는 것이다. 문학은 인간 문제의 인정과 인간 문제에 대한 저항의 공존가능성이다. 가령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인간 문제를 보여주면서 인간 문제를 인정하면서 나아가서 이에 대한 저항을 상상하게 만든다.  
   저항은 인정의 태도 같은 것이다. 인정하느냐 인정하지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한 이후의 문제이다. 이 이후에 따라서 삶도, 그리고 문학의 양상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적어도 김빠진 맥주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그러려니'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라는 김빠진 태도는 김빠진 맥주같이 맛이 간 것이다. 맛이 간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김빠진 것은 '존재'답지 않다.
  톡쏘는 청량함이 맥주의 규범이듯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규범이란 이런 것이다. 인간 세계가 고작 이렇다는 비극적인 인식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상상력과 감성을 열어주어야만 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처럼 말이다.
  누구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사적이고 적나라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여름 밤에도 사랑을 꿈꾸었다. 못생긴 여자로서 romance를 꿈꾸었다. 사랑은 점차 내게 비현실이 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어려운 문제인지 외모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문에 여름 내내 괴로움이 환했고 심지어 꿈꾸는 것조차 너무 힘들고 괴로운 마음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여름의 끝에서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었고, 지금 여전히 사랑을 꿈꿀 수 있다. 그런데 박민규의 위안이 없었어도 다시 사랑은 꿈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희망은 본능과 같은 것이니.

 '모든 걸 포기해 온 길고 긴 문장과... 모든 걸 포기하는 기나긴 문장... 설사 그것이 그날 밤의 착각이었다 해도, 그러나 그속에 숨어 있는 희미한 기대감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인간에게 남겨진 한 가닥의 기대... 그것이 바로 희망임을 나는 알 수 있었고, 사랑이 바로 신이 인간에게 남겨준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사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이제 매미 소리가 귀뚜라미 소리에 대체되고 있는 것 같다. 전혀 다른 여름이 전혀 다른 가을에 대체되겠지만 살뜰하게 이 아름다운 것이 남긴 여운을 보존해야겠지. 점점 아련해지면 어쩌나 싶어서 흔적을 내고 싶다. 그래서 여기에다가도 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직접 품에도 안겨서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렇게 하면 아련해지면서도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아련함으로 연명하는' 생애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제일 바라는 것일 수도 있겠고 어쨌든 전혀 다른 여름을 남기고 나누고 싶다.

by 말려봐 | 2009/08/28 23:55 | Sentimental | 트랙백 | 덧글(4)

Kiss Kiss Kiss


2분 13초

by 말려봐 | 2009/08/20 00:06 | Moving | 트랙백 | 덧글(0)

?

by 말려봐 | 2009/08/19 23:44 | Moving | 트랙백 | 덧글(0)

돌아오다

 


 


이글루에 돌아왔으나
여행에서는 돌아오지 못했다
여행에서 돌아왔다
라고 이글루에 쓰면
여행에서 돌아온 , 이글루에 돌아온 기념으로 환영회를

나 돌아왔고 돌아오겠어요.
내일 떠나요.

by 딸깍발이 | 2009/08/09 22:11 | 트랙백 | 덧글(1)

서늘

  서늘한 냄새를 맡고 싶어서 나는 더 음습한 서가로 파고들었다. 그 서늘하고 음습한 서가에서 나를 엄습했던 것은 점점 오래된 인간이 되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오래된 서가로 들어갔다는 것은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체념에 들어간다는 것이었고 오래된 인간이 되어감을 의미했다. 나는 오래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제 내 사랑이 하찮고 보잘 것 없음을 깨닫고 체념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잘 것 없다는 그러한 사랑의 초라한 진실'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그늘 아래 나는 들어갔고, 당분간은 이 곳에 안주해야 겠다. 안주라는 말이 안좋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자기방어를 하자면, 안주는 술먹을 때만 필요하고 좋은 것이 아니라 나같이 불안하고 붕뜬 사람에게는 한시적으로 필요하고 좋은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당분간은 서늘하고 그늘진 그 곳에서 축축하게 지내야겠다. 

by 딸깍발이 | 2009/06/27 00:15 | Sentimental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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