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5월 26일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이러한 태풍을 만끽하고파 하는 심정은 이미 앞 문장에서 약간 암시가 되었겠지만 스무 살 때 처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열살 때 나는 강력한 태풍을 만끽하고 심지어 날아갈 뻔한 어린이였다. 우리 지역의 태풍에 공중파 뉴스는 우리 지역을 주목했고, 그 전에 없던 스포트라이트는 심지어 내가 우리 지역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고양되어 하늘을 날 것 같았고, 실제로 태풍이 나를 고양시키기도 했다. 태풍상태에서 우산을 펴고 점프를 하면 태풍은 나를 더 높이 올라가게 했다. 태풍이 나를 날게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고 나의 날개였던 우산은 부러지고 살이 뒤집히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매우 울상이 되었고 태풍의 무서움도 '몸소' 알게 되었다.
내가 스무 살에 맞이했던 변화의 태풍 역시 무서운 것이었는데 사실 나는 잘 몰랐다. 무섭다는 것, 결국 내가 들어선 이 세계가 세계의 끝이 아니라 세계의 시작이라는 무서운 사실도 나는 잘 몰랐다. 지금 이렇게 남들보다 더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도 그 과거의 잘 몰랐던 무서운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무서움을 전혀 몰랐다면 이제는 너무 무서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무서움이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이 부끄러움이 무섭기도 하다. 부끄러움이 무섭다는 것도 무섭다. 이것이야말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무섭다는 사실을 말하는 내가 가장 무섭고 가장 의심이 간다.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내가 너무 잘 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무서울 때, 삶에 매달릴 때는 차라리 무서움을 모르던 때가 더 편하고 좋았었지 싶다. 아무 것도 모르던 때 태풍에 날아가고 싶어 했던 약간은 그로데스크했던 순수의 시절이 말이다.
# by | 2010/05/26 02:19






